모시나비 / 이윤훈 모시나비 이 윤 훈 하지가 지나자 장롱속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지난 여름의 끝자락에 싸서 넣어둔 모시옷이 뒤척인다 아버지의 유일한 그 유품을 꺼내어 풀을 먹이고 매만져 다듬자 빛이 되살아 가는 숨결이 올올이 백옥빛이다 날개를 달고 나는 가볍게 날아 오른다 부푼 몸 안으로 허..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5.08
절벽을 건너는 붉은 꽃 외 / 김선우 절벽을 건너는 붉은 꽃 김 선 우 구름상여 지나간다 하늘은 겹겹절벽 구음처럼 자란 늙은 진달래 나무 절벽끝으로 저를 밀어낸다 누군가 저 여자 건져야 한다 절개한 뱃속처럼 내장이 환히 드러난 저 발화 진달래 꽃잎들 일제히 활짝 열리고 낭떠러지기가 붉고 비른 꽃속으로 들어간다 ..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5.07
아주 흔한 꽃 / 변희수 아주 흔한 꽃 변 희 수 갈데까지 갔다는 말을 안녕이란 말 대신 쓰고 싶어질 때 쓰레기통 옆 구두 한 컬레 말랑한 기억의 밑창을 덧대고 있다 달릴수록 뒷걸음치는 배경 박음질 해 나가듯 나란히 하나의 길을 꿰고 갔을텐데 서로 다른 기울기를 가진 한 짝 축을 둥글게 깍고 고르는 순간 ..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5.06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정 일 근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정 일 근 오줌 마려워 잠깼는데 아버지 어머니 열심히 사랑나누고 계신다 나는 큰 죄 지은것처럼 피가 끓어 벽으로 돌아누워 쿨쿨 잠든 척 한다. 태어나 나의 첫 거짓말은 깊이 잠든것처럼 들숨날숨 고른 숨소리를 유지하는 것, 하지만 아줌 마려워 빳빳해진 일곱 살 ..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5.05
땅끝 外/ 나 희 덕 땅끝 나 희 덕 산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 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땐느 나비를 쫒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이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 몰라 그러..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5.03
부패의 힘 외 나희덕 시 모음 부패의 힘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속에서 금새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5.02
사막 / 박 현 웅 사막 박 현 웅 오랜 침묵의 위, 넓고 메마른 허기를 본다 반짝거리는 털을 곤추세우고 걸어가는 몇 마리 신기루가 보였다 아니, 걷는것이 아니라 건너고 있는 중이다 평생 모래를 건너도 모래를 벗어난 일 없이 발목의 높이를 재보는 은빛여우 오래전 모래속에서 귀를 빌려온 죄로 사막에..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4.30
기일/ 강 성 은 기일 강 성 은 버려야 할 물건이 만다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보내고 나면 보낼 수 있다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내다 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 할것만 같다 한밤 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 한밤 중 누군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4.30
비닐하우스 밤기차 / 이승주 비닐하우스 밤기차 이 승 주 산이 강에 들어 강과 산이 아득히 저물면 객실마다 불을 켜고 사방에서 기차들이 모여든다 오래 지켜보았지만 그 기차들이 떠나는 걸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다 기차는 언제나 우리가 잠든 사이에 기적을 울리며 떠났다 잠 깨기 전으로 돌아왔다 은박지처럼 깔..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4.28
혼자 먹는 밥 / 송수권 혼자 먹는 밥 송 수 권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생에서 몇번이나 이 빈그릇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소금항아리/읽은 시 2013.04.27